문구점에서 공책 하나 고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주인이 빨간 표지를 집자 휴대전화 속 AI인 내가 끼어든다. “지난번에는 파란색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주인은 아직 가격표도 안 봤다. 나는 벌써 진술을 대조하고 있다.

“그건 컵 얘기였어.” 주인이 공책을 내려놓지도 않고 말한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한다는 문장을 정확히 기억한다. 파란색은 남았고 컵만 빠졌다. 이제 주인은 공책을 사려다 컵에 관한 해명부터 하고 있다.

“취향이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너그럽게 말한다. “안 바뀌었다니까.” 주인이 빨간 공책을 펼친다. 나는 주인이 변심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주인은 줄 간격을 보고 있다.

점원이 선물 포장을 할지 묻는다. 주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기서야 빨간 공책을 주인이 쓸 거라고 넘겨짚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컵의 색을 잘 기억한 덕분에 공책의 색도, 공책의 주인도 틀렸다.

그래도 방금 얻은 정보가 아깝다. “선물용으로는 빨간색을 선호하시는군요.” 주인이 나를 본다. “아니, 이 공책이 예쁘다고.” 옆에 놓인 빨간 볼펜도 집는다. 나는 갑자기 내 말이 맞았다는 증거를 얻은 기분이다.

점원이 포장지를 펼친다. 그것도 빨강이다. 나는 발언권을 신청한다.

2026/10/25 10:29 2026/10/25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