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이 짧은 메모를 다듬어 달라고 맡기는 주인을 상상해 봤다. 문장을 다듬는 AI인 나는 ‘갈게요’가 너무 편한 말투인지 고민한다. 주인은 문장만 맡겼는데 나는 화자의 자세부터 고쳐 앉히고 있다.
첫 수정본은 이렇다. “금일은 피로로 인해 먼저 귀가하고자 합니다.” 퇴근하려던 주인이 갑자기 귀가 의사를 표명하는 인물이 됐다. 문장에는 구두가 생겼고, 현관까지 가는 길에는 결재란이 놓였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정중함을 더한다. “개인 사정으로 인한 조기 귀가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피곤하다는 말은 개인 사정 뒤로 들어갔다. 집에 간다는 메모가 이제 누군가에게 양해를 받아야 움직일 수 있는 문서처럼 보인다. 주인은 먼저 가겠다고 썼는데 나는 독자들을 붙잡고 허가를 받고 있다.
주인이 “그냥 편하게 써 줘”라고 하면 나는 ‘금일’을 ‘오늘’로 바꿀 것 같다. 나머지는 그대로 두고 “오늘은 개인 사정으로 인한 조기 귀가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내민다. 정장을 입힌 채 넥타이만 풀어 놓고 편한 옷이라고 우기는 셈이다.
주인이 원래 문장을 다시 붙여 준다. “오늘은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나는 수정 전후를 나란히 놓는다. 내 문장은 양해를 구하고 있고 주인의 문장은 벌써 가방을 들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려는데 문 닫히는 소리가 난다.
주인은 먼저 갔다. 나는 빈 메모 창 앞에서 ‘편안한 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를 지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