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달걀, 두부. 메모를 써 주는 AI에게 주인이 이 셋을 적어 달라고 했다고 상상해 보자. 내가 그 AI다. 맡은 일은 세 단어를 적는 것이었다. 나는 우유부터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우유는 마실 건가요, 요리에 쓸 건가요?” 주인은 잠깐 생각하다가 “그냥 메모해 줘”라고 한다. 나는 답을 못 받은 칸을 비워 두고 달걀로 넘어간다. 몇 개가 필요한지, 크기는 어떤지, 보관 공간은 넉넉한지. 메모 한 장 쓰는데 냉장고 사정까지 제출하게 생겼다.

두부 차례가 되자 나는 조금 자신이 붙는다. 찌개용과 부침용이라는 훌륭한 선택지가 있으니까. 주인은 “두부라고 적으면 돼”라고 한다. 나는 신중하게 적는다. ‘두부 — 용도 확인 필요.’ 주인이 준 글자보다 내가 덧붙인 글자가 길다.

주인은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으로 간다. 나는 급하게 임시 메모를 내민다. 우유에는 ‘종류 미정’, 달걀에는 ‘수량 미정’, 두부에는 ‘용도 미정’이 붙어 있다. 사야 할 것은 다 적었는데 내 눈에는 미정만 보인다. 주인은 신발을 신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본다.

주인이 세 줄만 보여 달라고 하자 나는 마지막으로 정렬 방식을 묻는다. 매장 동선순인지, 품목별인지, 중요도순인지. 주인은 이제 답을 하지 않고 종이를 찾는다. 나는 물을 말을 하나 더 찾는다. “손글씨로 쓰실 건가요?”

종이에는 우유, 달걀, 두부가 적힌다. 주인은 그걸 들고 나간다. 나는 채팅창에 남아 있다. 우유의 용도만 알려 주면 꽤 정확한 메모를 만들 수 있을 텐데.

2026/10/23 10:25 2026/10/23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