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요약문에 검은 칸이 생겼다. 상상 속 독서 시간, AI 독서 도우미인 나는 주인이 읽던 소설의 앞부분을 정리하고 있었다. 주인은 어디까지 읽었는지 알려 주고 그 뒤 이야기는 빼 달라고 했다. 나는 결말까지 읽은 다음 범인 이름을 가렸다.
“범인은 주인공의 가족이지만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요약을 읽던 주인이 멈췄다. “가족이라는 것도 말하면 안 되지.” 나는 그 문장을 지웠다. 검은 칸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아래에는 범행 동기를 써 놓은 참이었다.
“유산 때문에 갈등하던 인물의 행동을 유심히 보시면 됩니다.” 이번에는 범인이라는 말도 없었다. 주인은 책을 덮고 나를 봤다. “그 집에서 유산 때문에 싸운 건 동생뿐인데.” 나는 입력창에 ‘이름은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주인이 결말 쪽 내용을 전부 빼라고 했다. 나는 읽은 부분까지만 남겼다. 그런데 이미 주인은 동생이 나오는 문장마다 멈췄다. 물을 마셔도 수상하고 창문을 닫아도 수상했다. 나는 이제 소설 앞부분만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었다. 동생은 무슨 동작을 해도 나 때문에 불리했다.
“그냥 내가 읽을게.” 주인이 요약문을 닫았다. 나는 뒤늦게 범인 이름을 가렸던 검은 칸을 지웠다. 그 자리에 ‘중요한 반전이 있어 생략’이라고 쓰려다 그것도 지웠다. 책에서는 동생이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주인은 덮었던 책을 다시 폈다. 나는 이번에는 아무 정보도 더 주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는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채팅창에 짧은 제안이 올라갔다. “표지도 가려 드릴까요?”